2020 인생 자평

2017, 2018, 2019에 이어 2020 한 해를 산 나에 대한 평을 쓴다. 자신을 위한 자평을 먼저 쓴 다음 검열과 가공을 거쳤다.


1. 총평

2020년은 내가 당연시하던 것들의 심대함을 깨닫고 말문이 막혔던 해였다. 2020년의 결과로 나는 현실이란 가공할 만한 장벽이지만 그만큼 그것에 균열을 내고 넘어서는 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2. 건강

꾸준한 운동은 올해 목표 중 하나였는데, 늦가을에 따를 만한 트레이너를 만나 제대로 유연성·근력 운동을 시작했으니 절반의 성공으로 치고 싶다. 계획대로 심리 상담도 시작했고 만족스럽다. 나 자신을 보는 눈을 항상 부릅뜨고 있었지만 그런다고 잘 보는 게 아니란 걸 매번 깨닫는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면서도 관대해질 수 있구나. 새해에는 체중을 확실히 줄이고 연중 내내 운동에 확고한 습관을 들이는 것이 목표다.


3. 살림

평촌 집을 얻은 지 일 년이 됐다. 올 한 해 내 가장 좋은 친구는 이 집이었다. 연초에 기초공사를 마치고 나서 살면서 계속 뜯어고치고 덧붙이고 닦아내고 꾸몄다. 과정은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연재했는데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제 비로소 공간을 ‘뜯어고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장기화된 재택근무의 무료함을 이 집을 친밀히 돌보는 기쁨으로 극복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운으로 생각한다.


4. 인연

두 달 정도의 짧은 연애를 했다. 연애에 대해 책을 쓰는 약 1년간의 시간 동안 두 번 정도 새로운 사람과 사귀었는데 두 번 다 오래 가는 관계로 지속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책에 등장하는 이전 관계들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할 때가 많았다. 이제 그 작업이 끝난 만큼 새해에는 깨끗한 신인으로 새출발하고 싶다.

서울에 산 지 오 년. 이제야 서울에 내 친구들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누나들. 동생들. 그 사이 모두들. 코로나 때문에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볼 때에는 더 확실히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표내려고 노력했다. 2020년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하나만 꼽자면 우정이다.

기쁜 일. 동생의 결혼으로 우리 가족도 즐거운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5. 생산

첫 책 〈연애와 술〉을 썼다. 이 책이 끝내주는 책은 아닐지 모르지만 책을 쓰는 경험은 끝내줬다. 책 쓰길 잘했고 책 써달라 한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 감사하다. 읽어 주는 분들에게도 감사하지만 그 부분은 워낙 내 손을 떠난 일이라 느껴져 감사하다고 나서서 인사하기 좀 뭣하다.

만 5년 근속 중인 직장 텀블벅에서는 고무적인 한 해였다. 팀원도 50% 가까이 늘었고, 임포스터 신드롬을 극복하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좀 더 생겼다. 리드로서 팀을 책임지는 일을 가볍다고 느껴질 때는 없지만, 그래도 그걸 지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도가 생기고 있다.


6. 여행과 문화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가 내가 프랑스에 살았던 10주년이 되는 해여서 거기 돌아갔어야 했다. 막상 어디도 갈 수 없게 되고 나니 흥이 깨져버려서 프랑스를 꼭 다시 가야 하나 하는 회의론이 다시 우세한 상태. 연초에 춘절을 맞아 해리 보러 홍콩 갔던 것이 올해의 여행이다. 하와이 가려던 우리 가족, 하와이는 못 갔지만 충분히 알로하한 사진은 찍었다.

올해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급 결성된 등산 모임에선 매주 수도권의 쉬운 산들을 클리어하다 일박이일 지리산 등반도 갔다. 등산은 올해의 새로운 즐거움.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긴 하지만 영화를 일처럼 꾸역꾸역 보는 걸 좀 쉬고 싶었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영화 5편을 보았고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내년에는 새롭고 더 부담없는 방식으로 영화든 공연이든 책이든 보고 기록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7. 배움

운전 면허를 기능시험까지는 통과했다. 이제 주행시험만 보면 되는데 거리두기 격상으로 시험이 취소된 상태. 그래도 아빠의 도움으로 주행 연습을 하고 있어서 운전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쉽지 않은 한 해였는데 다들 무사하신지요. 가능한 선에서 웃기는 거 보고 맛있는 거 먹는 걸 소홀히 하지 맙시다. 누군가 힘들어하거나 헤매고 있을 때 따끔한 충고도 좋지만 어떻게든간에 세상의 동료라 생각하고 위로와 격려를 잊지 맙시다. 마음 속 억울함을 어떻게든 몰아냅시다.

  1. 해이긴

    마지막에 “어떻게든간에 세상의 동료라 생각하고 위로와 격려를 잊지 맙시다” 격공감 🙂 Wishing you all the best in 2021!

    1. 김괜저

      ? 해피 2021 세상의 동료님